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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바속촉 바게트 만들기

윤여준

밀가루 200g, 물 150g, 이스트3g
빵을 구성하는 필수 재료가 있다. 밀가루, 물, 이스트. 여기에 각자의 취향에 맞추어 재료들을 추가할 수는 있지만, 밀가루와 물, 그리고 이스트가 없으면 빵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김옥정과 크랜필드는 《자르고 남은 구름》을 만들기 위해 각자가 지닌 최소한의 필수 요소들을 준비하여 마주하였다. 마치 제빵에 있어 밀가루, 물, 이스트가 있듯, 김옥정과 크랜필드는 ‘스쳐간 감각 을 붙잡아 놓는 작업’, ‘보이지 않는 것들로 만드는 이야기’, ‘다채로운 감각에 대한 호기심’이 라는 두 작가에게 있어 중심을 이루는 요소들을 손에 쥔 채 만났다.

    김옥정은 세상에 반응하는 말들이 자신 안에 쌓여갈 때 그 이야기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그가 감각한 것들 중 잔상이 오랫동안 남는 것을 점차 구체화시켜 색 과 형상으로 화면을 채운다. 크랜필드는 어느 한순간을 사로잡는 감각에 집중하며 음악을 만든 다. ‘모호한 정서를 조립하는 과정’이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한 그의 말처럼 크랜필드는 특정 한 감각을 기억하고 소리를 쌓아 그 느낌을 음악으로 재현한다. 이처럼 비슷한 알레고리로 작 업을 이어가는 두 작가는 서로의 영역을 동경한다. 남의 떡이 더 커보여 흘겨보는 것이 아닌, 흔쾌히 다른 이의 떡을 만져보고 먹어볼 용기를 내는 것이다.

    좋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가루와 이스트를 채에 걸러 내리고, 물을 따듯한 미온수로 데워야 한다. 완성된 빵을 빨리 보고 싶다는 조급함을 내려놓는 자세도 중요하다. 김옥정과 크 랜필드는 협업을 위해 각자가 지닌 재료를 잘 다듬고 온도를 맞추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을 것을 인지하고 천천히 시간을 갖고 작업에 임했다. 고운 가루와 따스한 물이 한 볼 안에 담겼다.

맨들맨들한 반죽을 위하여
일상 속에서 자신의 감각과 링크된 순간을 기억하고 그 장면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하던 두 작 가에게, 서로의 작업으로부터 작업을 구상해나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마 치 하나의 볼 안에 방금 담긴 밀가루와 물, 그리고 이스트가 각자의 관성에 따라 흩어져 있 듯, 작업으로 불러들이지 않던 서로의 작품으로부터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엔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처음 서로를 접촉한 밀가루와 물은 가라앉거나 부유하며 어우러지지 않는다. 시작단계에서의 반죽은 거칠고 작은 덩어리들을 만든다. 일부의 밀가루와 일부의 물 이 섞여 덩어리를 만들어가지만, 여전히 흥건한 물과 흩날리는 밀가루, 이스트는 반죽하는 손 을 방해하곤 한다. 그럼에도 조금씩 덩치를 키우며 찰기를 다져가는 반죽의 모습에 반복적인 움직임을 멈출 수 없다. 한참 반죽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있다. 안타깝게도 덩어리가 되었다고 끝이 아니다. 이불을 개듯 반죽을 접고 접으며 빵의 결을 만든 다. 정성스런 반복이 더해질수록 결이 살아있는 빵이 된다.

    김옥정과 크랜필드는 협업의 과정에서 서로의 작업에 대한 단순한 수식이 되지 않기 위 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삽화가 되지 않기 위해, 단순한 배경음악이 되지 않기 위해 상대의 작 업을 빙-둘러갈 방법을 고민한 흔적을 작업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작업이었던 크랜 필드의 <20200409_1>과 <20200409_2>를 듣고 만든 김옥정의 <노오란 소멸>은 전체 작품 중 유일하게 선후 관계를 추측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 말하는 선후 관계는 하나가 다 른 하나에 종속되는 사이가 아닌 한 작품과 그 작품 주변을 돌며 상대를 툭툭 건드려보는 조 심스러운 관심을 의미한다. 협업의 시작점에서 김옥정과 크랜필드는 에둘러 돌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처럼 서로의 작품을 섣부르게 쫓지 않고 그 주변을 맴돌며 거칠고 작은 덩어리들 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두 작가의 협업은 금세 한 덩어리의 반죽을 만들었고, 나아가 서로의 작품을 관찰하고 둘러보는 것을 넘어 상대의 작품과 대화하고 작품에 말을 걸며, 보다 더 다 양한 방식의 관계성을 떠올린다. 마치 평소 두 작가의 작품이 처음 시작될 때처럼 서로의 작 품 속, 자신에게 오래 남는 잔상을 포착하고 그 부분과 소통을 이어나가며 보다 자연스러운 협업을 만들어나간다. 꼭 반죽을 접고 접어 새로운 면과 다른 면을 만나게 하는 것처럼 말이 다. 김옥정과 크랜필드는 4개월 동안 꾸준히 반죽을 이어나갔다. 맛이 없을 리가 없다.

1+1=6, 발효의 보너스
찰진 반죽을 만들었다면, 반죽을 잘 밀봉하여 발효시켜 주어야 한다. 발효는 시간이 온전히 만드는 과정이기에 작업자 입장에선 마치 요행을 얻은 듯한 기분이다. 아무 노력 없이 기다리 기만 해도 몸집이 3배나 커져 있다. 노력 없는 대가를 의심해보다 직전까지 반죽하며 애쓴 모 습이 생각나 아무 노력도 없던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부풀어 오른 반죽의 사이 사이는 공기 구멍이 만들어져 있다.

    김옥정과 크랜필드는 협업의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레 서로의 작업에 대답을 할 수도, 공감을 전할 수도, 상대의 이야기 옆에서 나의 이야기를 말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크랜 필드는 인터뷰에서 이번 협업이 “상대의 세계에 몸을 깊숙이 담갔다가 나오는, 또는 각자 서 로의 세계를 통과한 다음 다시 내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1])처럼 느껴졌다고 말한다. 두 작가 모두 처음엔 서로의 작품 주변을 배회하다 결국 상대의 작품을 뚫고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 오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상대의 작품을 경유하여 나로 회귀하는 방법을 습득한 후, 김옥정 과 크랜필드는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작업 속에서 풀어냈다.

    보다 적극적으로 서로의 작품에 대해 상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며 작업을 이어 가서인지 자연스럽게 김옥정의 작품은 그가 집중하는 색과 형태가 확장되었다. <구름 한 젓가 락>은 마치 크랜필드의 <휘바람>의 간주 부분에 잠시 등장하여 몽글몽글한 촉감을 전해주는 퍼포머같았고, <날씨에도 스위치가 있다면>은 크랜필드 음악과 그 협업에 대한 김옥정의 일기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 등장하는 색과 구성은 어떤 제약 없이 편안하게 선택되어 사용된 것 마냥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크랜필드의 <산 옮기기>는 김옥정의 <모래의 산>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고 걸음마다 모래를 한 삽씩 퍼내 산을 옆으로 옮기는 행위를 반복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는 마치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의 <신념이 산을 옮길 때(When Faith Moves Mountains)>를 홀로 수행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크랜필드의 음악에서 반복되어 고조되는 멜로디는 그 행위가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닌 자율적인 재미를 위 해 행해지고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이처럼 김옥정의 작업에서 출발한 크랜필드의 음악은 그 특유의 몽환적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다.

    크랜필드의 <스무 개 또는 그 이상>의 가사 중엔 “세상을 쫓던 사람은 항상 그 속에 없는 자신에 놀라”라는 구절이 있다. 이 가사처럼 서로의 작업을 쫓던 두 작가는 그 속에 없 던 자신에 놀라 다시 자신에게 집중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을 건넬 수 있는 작품을 만들며 두 작가의 작품은 1+1=2라는 수식을 넘어선 1+1=6이라는 공기 구멍을 가득 머금은 커다란 발효된 반죽이 되었다.

빵 굽기
반죽이 비로소 빵이 되는 시간, 오븐에서 빵은 마지막으로 몸집을 키운다. 발효된 반죽을 원 하는 모양으로 성형하여 한 차례 더 발효시킨 후 예열되어 있는 오븐에 넣는다. 늦게 밝히지 만 사실 이 글에서 만들고 있는 빵은 바게트인데, 바게트의 매력인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을 만들기 위해선 오븐 가득 물을 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수분을 오븐 구석구 석 뿌려주고 반죽에도 물을 뿌려주어야 더욱 바삭한 겉표면을 만들 수 있다.

    김옥정과 크랜필드는 전시장에 그들의 작품을 모두 펼쳐 놓으면서 마지막으로 협업의 몸 집을 부풀렸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사각형 구멍이 뚫린 연한 분홍빛 가벽을 마 주하게 된다. 마치 두 작가가 협업의 시작에서 서로의 작품을 에둘러 갔듯, 관람객 역시 전시 를 보기 위해서는 시야를 막고 있는 가벽을 지나야 본격적인 전시를 마주할 수 있다. 전시장 에는 김옥정의 작품과 크랜필드의 음악이 함께 놓이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데, 이는 어떤 작품 이 어떤 작품과 연관 관계를 지녔는지를 캡션을 보지 않은 채 상상하는 재미를 자아낸다. 이 러한 시도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김옥정의 회화에서 어느 부분에 눈이 머물고, 또 크랜필드의 음악의 어느 부분이 머릿속에 맴도는지, 그리고 그것이 서로 맞닿는지 혹은 다른 이야기를 하 고 있는 지 파악해보는 경험을 제공한다. 본래 시에 삽화를 더하면 그 삽화 속 이미지를 상상 하며 시를 읽게 되고, 소설이 영화화 되었을 때 소설 속 인물을 배우의 모습으로 상상하게 되 듯이, 창작물에 정보가 추가되면 추가될수록 상상의 범주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옥 정과 크랜필드의 작품은 서로의 작품에 서로의 작품을 더하여 더욱 큰 상상의 범주를 만든다. 오븐 속 열기를 통해 빵이 부풀어 오르듯, 그들은 하얀 정방형의 공간 안에서 서로의 작품을 펼쳐놓으며 관람객들의 상상의 폭을 넓힌다.

    전시의 설치 방법 역시 관람객의 흥미를 자아낸다. 김옥정과 크랜필드의 부드러운 협업 은 전시장 속 그들이 만든 설치 구조와 장치들과 함께할 때 단단한 하나로 느껴진다. 마치 오 븐에 뿌려진 물이 단단한 표면을 만들 듯, 눈을 위ㆍ아래로 이동하게 하는 디스플레이 방식이 나 김옥정의 작업이 연장되는 듯한 구름 위에 놓인 크랜필드의 음악이 나오는 디바이스, 앉아 서 음악을 듣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여러 작품들의 엇갈린 조화는 두 작가가 4개월간 만들어 간 협업이 지닌 섬세함과 견고함을 드러낸다.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고민을 더하여 보다 재밌 는 방식을 찾아보고자 한 두 작가의 노력은 전시장 구석구석에 묻어있다. 이와 같은 전시 구조 와 형식은 김옥정과 크랜필드의 작품이 분리되어 보이지 않고 단단한 ‘함께’로 보이게 만든다.

    뜨거운 오븐에서 갓 나온 바게트는 열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잘라야 빵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뜨거울 때보단 조금 식었을 때가 더 적당한 것이다. 《자르고 남은 구름》의 두 작가의 전시는 적당한 온도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서로의 작업에 대한 존중과 흥미, 그리고 상대의 작품을 통하여 만나는 나의 이야기, 전시장에서 보여지는 단단한 관계성. 김옥정과 크 랜필드의 바게트는 적당한 결을 지니며 완성되었다. 이제 맛있게 먹을 일만 남았다. 인조이!



[1] ) 김옥정x크랜필드 <자르고 남은 구름> 작가들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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